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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인연 - 또 하나의 가족

글쓴이홍보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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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2-02

조회수896

세종학당재단 새소식 2021년 12월 제 102호
누리벗 사랑방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인연 -  또 하나의 가족

스승과 제자로 만난 김수진 교원과 데보라 씨가 친구로, 더 나아가 또 하나의 가족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라질 상레오폴두 세종학당에서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지난 5년여간의 추억을 들여다본다.

 

오해로 시작한 인연

김수진 교원:
2016년 8월,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에 첫발을 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네요. 이곳에서 20대 후반부터 서른을 훌쩍 넘기기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 추억을 쌓아 왔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인연을 꼽자면 자연스럽게 ‘데보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데보라는 상레오폴두 세종학당에서 제가 처음 맡았던 세종한국어 초급1반 학습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글 파트 수업 시작 후, 3주나 지나서야 뒤늦게 참여하였지요. 이메일이 누락되어 수업 시작일을 안내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학습자들보다 늦게 만났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데보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데보라 씨 :
세종학당을 처음 찾았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케이팝을 통해 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문화와 경제 발전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중에 한국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여러 학교에 대해 알아보던 중 유니시노스 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던 상레오폴두 세종학당을 만나게 되었어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비록 그 세상에 발을 딛는 시점이 의도하지 않게 조금 늦긴 했지만요.

김수진 교원:
보통 한글 파트에서 결석을 한 학습자들은 다음 수업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중도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데보라도 첫 수업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해를 하나도 못하고 있나? 결국 중간에 포기하겠구나’라고 혼자 짐작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제 오해였습니다. 첫 수업이 끝난 후 데보라는 저를 찾아와 지난 수업 자료를 요청했어요. 데보라가 다가오자 수업 시간 내내 찌푸린 표정을 봤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지요. 또, 바로 회의 일정도 있었기에 급히 전달하느라 자료를 복사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던 자료를 급히 건넸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데보라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데보라 씨 :
당시에 받은 자료를 살펴보니 김 선생님께서 답안을 손 글씨로 적어 놓으셨더라고요. 정확하게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지요.

김수진 교원:
메시지를 통해 대화하면서 데보라에 대한 오해도 풀렸어요. 수업 시간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것은 강의에 집중하느라 그랬던 것이었지요. 데보라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한국어 공부에 열의를 보였어요. 그런 열의를 느끼고 저도 더 열심히 도왔고요. 우리는 점점 수업 외에도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데보라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학당을 찾아와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또 제가 아픈 날이면 양호실까지 따라와 보호자 역할을 자청해 주었답니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어요. 요즘도 우리는 처음 만난 날에 대해 가끔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데보라는 제가 오해했던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여요.

 

친구에서 가족으로

김수진 교원:
데보라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 가족들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아 가게 되었어요. 특히 크리스마스 때가 기억에 남네요.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입니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데보라와 가족들은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어요. 데보라와 가족들은 독일계 브라질인들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했는데요, 가족들이 쓰는 말이 포르투갈어인지 독일어인지 분간하지 못해 따라 배우려고 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네요.

데보라 씨 :
브라질에서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크리스마스에 문을 닫아요. 선생님께서 혼자 계실 것이 걱정되었기에 집으로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세종학당에서 학습하기 전까지는 외국인을 만나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김수진 선생님을 만났을 때 정말 신기했습니다. 처음 김 선생님께서는 포르투갈어를 몰라 그림을 그려 많이 설명해 주셨는데, 그림을 진짜 못 그리시더라고요. 선생님임에도 그 모습이 참 귀여웠어요. 어떻게든 학습자들을 열심히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덕분에, 저를 비롯한 많은 학습자들이 마음을 열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고, 그렇게 서로 마음을 나누다 보니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김수진 교원:
새해 연휴에 데보라와 가족들이 저를 위해 생일 케이크를 선물한 적도 있어요. 제 생일은 11월이었지만, 한국에서 매년 1월 1일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듣고 마련해 준 특별한 선물이었지요. 한국어로 ‘생일 축하해’라는 글귀를 새긴 케이크였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데보라 씨 :
이제는 가족 행사에 김수진 선생님께서 오지 않으면 친척들이 먼저 찾으며 안부를 물어볼 정도예요. 우리는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나지만, 자매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만났는데,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수진 교원:
그래도 여전히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어요. 지난 10월 데보라의 생일에도 집으로 찾아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최근에 제 생일 파티도 치렀는데, 데보라 가족과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앞으로 점점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비주얼 이미지 우리의 추억

김수진 교원:
비록 데보라의 시작은 다른 학습자들보다 늦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노력했어요. 나중에는 반 친구들의 학습을 도울 정도로 실력을 키웠지요. 또, 학기 말 성취도 평가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으며 1등으로 수료했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질투하는 학습자들도 있었어요. 데보라의 성적은 스스로 이룬 것인데, 저와 친해서 성적이 좋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지요. 그래서 다른 파견교원 선생님께 데보라가 속한 반의 수업을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에서도 데보라의 실력은 빛을 발했습니다. 2019년 5월에 진행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하며 우수학습자로 뽑혔거든요.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했어요.

데보라 씨 :
그때 우수학습자로 뽑힌 덕분에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 호텔에 머물고 있을 때 김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찾아와 축하 선물을 주신 것이 기억에 남네요.
사실 저는 초청받기 1년 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조금씩 용돈을 모아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입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마침 김 선생님도 한국에서 워크숍이 있었답니다. 이틀 정도 먼저 한국으로 떠난 김 선생님은 공항으로 직접 마중을 나와 주셨어요. 그런데 엄청 웃긴 한국어 입국 환영 팻말을 들고 계시더라고요. 깜짝 이벤트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때 김 선생님 댁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인연을 잊지 않고 다시금 저를 축하해 주기 위해 호텔까지 찾아 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김수진 교원:
제가 데보라의 가족들을 만나 느꼈던 감정을, 데보라 또한 느꼈을 것이라 믿어요. 그리고 짧지만 한국에서의 경험들이 데보라에게 많은 추억으로 남길 바랐어요.

데보라 씨 :
전주에서 봤던 판소리 공연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판소리 공연을 보기 전에는 전통문화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판소리 창자가 우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코미디를 좋아했기에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어요.

김수진 교원:
올해 데보라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졸업 논문을 쓰고 인턴십 활동 등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지요. 다행히 지난 학기에 세종한국어8 과정까지 다 마쳐서 대학교 졸업 전에 우리 세종학당의 모든 과정을 수료했어요.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녀도 토픽(TOPIK) 수업이 열리면, 꼭 학당으로 다시 돌아와 공부했으면 해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추억이 쌓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데보라 씨 :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어요. 김수진 선생님께서도 이런 제 꿈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세종학당과 김 선생님은 마음 속의 ‘지도’와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상레오폴두 세종학당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항상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준 김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제가 앞으로 어디를 가든 선생님이 자랑할 수 있는 멋진 제자,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김수진 교원:
데보라의 내일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길에 늘 제가 함께할 거예요. 문득 데보라의 첫 해외 여행을 함께한 시간이 떠오릅니다. 버스를 타고 우루과이로 떠났지요. 친구이자 가족, 그리고 삶의 동반자로서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추억만큼, 앞으로 쌓아갈 추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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