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이 만난 사람들
“한복을 벗어도,
한국과 이어진 감각이 오래 남기를”
- 2026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연수
‘한복문화 체험’ 행사에 함께한 이진희 교수 -
영화와 드라마 속 인물의 삶을 담아내고, 전시와 미디어아트로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온 한복.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진희 교수는 30년 가까이 의상으로 한국의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이번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연수에서 학습자들의 한복 체험을 위해 의상을 준비한 이진희 교수에게 한복에 담긴 아름다움과 전통, 그리고 이를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 가는 작업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세종학당’ 독자들에게 교수님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무대·영상 의상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계신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도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에서 무대미술(의상)을 가르치는 이진희입니다. 30년 가까이 한복과 한국의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공연, 전시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의상으로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연인〉과 영화 〈안시성〉, 〈간신〉 등의 의상 디자인을 맡았고, 최근에는 공연 의상을 넘어 한복 전시와 미디어아트, 국제 문화 프로젝트로 작업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뉴욕 한국문화원 개관전, 런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 한국관 초대 전시, G20 기념 브라질 리우 예수상 한복 미디어 파사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시간의 궤적: 한복〉 등의 작업과 APEC 기념 미래한복 패션쇼의 총연출 및 전체 한복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복이 동시대의 예술과 기술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읽힐 수 있는지 탐구하고 그 가능성을 제시해 왔습니다. 현재는 창작 현장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는 한편, 다음 세대가 전통을 자기만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2024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
<시간의 궤적: 한복>
Q.
오랜 시간 무대와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의상을 통해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 오시면서 교수님께 ‘옷’, 그리고 특히 ‘한복’은 어떤 의미를 지닌 작업일까요?
A.
저에게 옷은 인물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대와 신분, 욕망과 감정,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특히 공연 의상은 배우가 인물의 몸과 마음에 다가가도록 돕고, 관객에게는 대사보다 먼저 인물의 상태와 극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래서 한 벌의 옷 안에는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세계까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복은 그중에서도 제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가장 깊은 언어입니다. 한복의 선과 여백, 겹침과 묶임, 몸을 감싸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구조에는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미감,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축적돼 있습니다. 저에게 한복은 과거의 형식을 보존하는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고 다시 살아나는 문화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한복을 디자인할 때에는 옛것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그 안의 본질과 정신을 발견해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하려고 합니다.
2025년 진주실크박물관 개관 기념 ‘오방 – The Woven Cosmos’
실크 아트 퍼포먼스 패션쇼에서 선보인 이진희 교수의 작품
Q.
이번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연수에서 전 세계 세종학당 학습자들이 서울을 둘러보며 한복을 직접 입어보는 시간이 마련됐습니다. 세종학당 학습자들을 위한 한복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A.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번 한복 체험의 대상이 일반 관광객이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꾸준히 공부해 온 세종학당 학습자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분들에게 한복이 자칫 궁궐 주변 대여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과장된 형태로만 기억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우용 이사장님께서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주셨습니다.
물론 궁궐 주변의 대여 한복 역시 하나의 즐거운 놀이 문화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랜드에서 공주 옷을 입고 이야기 속 인물이 돼 보는 것처럼, 궁궐에서 한복을 입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경험도 한복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좋은 방식입니다.
다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깊이 공부해 온 세종학당 학습자들에게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한복이 지닌 절제된 우아함과 품격, 신분과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와 드라마를 위해 직접 디자인했던 한복을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영화 〈간신〉과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연인〉 등에 사용된 의상 가운데 왕과 왕비의 궁중 복식부터 다양한 계층에 이르는 의복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신분,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한복을 고르게 선별했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옷을 입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한복이 한 시대의 질서와 미감, 한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는지 자연스럽게 느껴 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한복을 처음 입는 분들이 많은 만큼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착용감과 활동성을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국적과 체형, 피부색이 서로 다른 학습자들이 한자리에 섰을 때 각자의 개성이 한복의 다채로운 색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색채와 실루엣의 한복을 준비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경험이 단순히 ‘한국의 옷을 한번 입어 보는 체험’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한복을 입고 서울을 걸으며 자신이 배워 온 언어와 문화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옷을 벗은 뒤에도 ‘한국문화가 나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오래 남는다면 디자이너이자 교육자로서 가장 기쁠 것 같습니다.

영화 <간신>의 의상

Q.
교수님께서는 전통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A.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왜 그 시대에 이러한 형태가 생겨났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증은 창작을 막는 울타리가 아니라 상상력을 뻗어 나가게 하는 단단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복식 구조와 소재, 색채, 신분 체계, 생활 방식을 충분히 이해해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형하며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전통의 겉모양만 가져와 장식적으로 변형하면 한복이 지닌 맥락은 쉽게 사라집니다. 반대로 그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와 구조적 원리를 이해한 뒤 재해석한다면, 표현이 과감하더라도 한복 고유의 힘과 정체성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작품마다 시대와 인물, 서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청춘의 생동감과 인물의 감정선을 색채와 문양, 실루엣에 적극적으로 담았습니다. 특히 〈성균관 스캔들〉은 사극 의상에 디지털 프린팅과 스팽글 소재 등 당시로서는 낯설고 파격적인 현대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작품이었습니다. 전통 한복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의 젊은 시청자들이 인물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님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 한복은 〈성균관 스캔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이 작품의 의상은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반면 〈연인〉에서는 오히려 ‘이번에는 더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믿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사극 속 한복이 점점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연인〉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과 상실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인 화려함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과 감정이 옷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야 했습니다. 바랜 색과 자연스러운 옷감, 반복해서 입고 고쳐 입은 흔적으로 전쟁 전후의 삶의 변화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한복을 아름다운 볼거리로만 소비하기보다 인물이 견뎌 온 시간과 삶의 무게를 담는 그릇으로 바라봤습니다.
결국 저에게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두 요소를 얼마만큼 비율로 잘 섞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선택이 작품의 세계와 시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에게 얼마나 충실한가입니다. 때로는 과감한 현대화가 필요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전통의 원형을 깊이 이해한 뒤 작품이 요구하는 가장 정직한 언어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한복을 재해석할 때 지키고자 하는 기준입니다.

디지털 프린팅, 스팽글 소재 등 현대적 요소를 도입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의상
Q.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 등 케이-콘텐츠를 통해 한복을 처음 접하는 해외 사람들이 많습니다. 콘텐츠 속 한복이 세계인이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A.
케이-콘텐츠는 세계의 관객이 한복을 처음 접하는 가장 생생하고 친근한 통로가 돼 준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의 유물이나 도록으로 한복을 처음 만나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자신과는 다소 멀리 떨어진 과거의 옷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이 한복을 입고 사랑하고 갈등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옷의 명칭이나 시대적 배경을 알기 전에 그 색과 선, 움직임에 먼저 마음이 끌립니다. 결국 서사가 한복을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감정을 전달하는 살아 있는 문화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의상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작품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각 언어입니다. 극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한 인물의 옷은 그가 지나온 시간과 내면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의상을 독립된 장식으로 보기보다 인물과 서사를 함께 구축하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구르미 그린 달빛〉이 방영된 뒤 해외 시청자들로부터 의상의 색과 문양, 인물마다 다르게 표현된 실루엣의 의미를 묻는 다이렉트 메시지(DM)와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시청자들은 단순히 “한복이 아름답다”는 반응에 머물지 않고, 색 하나와 문양 하나에 담긴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찾아내고 읽어 주셨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을 향한 관심이 한복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다시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 궁궐과 생활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배우와 인물에게 마음이 끌렸던 관객이 그 인물이 입은 옷의 이름을 찾아보고, 문양의 의미와 색채의 상징을 알아보며, 나아가 그 시대의 삶과 문화까지 공부하게 됩니다. 이처럼 좋은 콘텐츠는 한복을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고 발견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문화는 지식으로만 전달될 때보다 마음으로 공감할 때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케이-콘텐츠 속 한복은 단순한 시각적 볼거리를 넘어 한국의 미감과 역사, 사람 사이의 관계와 정서를 압축해 전달하는 문화적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한복의 넉넉한 품과 여백, 겹쳐 입는 구조,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선에는 한국인이 자신의 몸을 대하는 태도와 자연, 타인과 관계 맺어 온 방식이 축적돼 있습니다. 관객은 이런 배경을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화면 속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을 통해 그 미감을 먼저 느낄 수 있습니다. 콘텐츠는 그렇게 낯선 문화를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어 줍니다.
동시에 케이-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창작자의 책임도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관객에게는 한 작품 속 한복이 한국의 전통 복식을 판단하는 최초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에서 반복되는 이미지가 실제 전통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거나, 화려하고 자극적인 요소만 한복의 특징으로 소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유행하는 이미지를 답습하기보다 시대와 복식을 충분히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과 인물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야 합니다. 고증에 따른 재현에 머물러서도 안 되지만, 현대적인 감각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한복의 구조와 맥락을 가볍게 지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케이-콘텐츠 속 한복은 관객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질문을 남깁니다. ‘저 색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저 인물은 이런 옷을 입었을까?’, ‘실제 한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입었을 때 어떻게 움직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긴다면, 그 순간 한복은 화면 속 의상을 넘어 한 사람과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통로가 됩니다. 작품으로 시작된 관심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케이-콘텐츠 속 한복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의상
Q.
교수님께서는 뉴욕 전시를 비롯해 해외에서 한복과 한국적 색채를 선보이는 작업을 이어오기도 하셨는데요. 해외 관객들이 한복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교수님이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나, 오히려 한국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발견한 한복의 매력이 있었나요?
A.
해외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관객들이 한복을 반드시 ‘한국의 전통 의상’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관객은 한복을 보면 시대와 신분, 색과 문양의 상징 등 역사적 맥락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해외 관객들은 배경지식에 앞서 한복의 선과 비례, 몸과 옷 사이의 공간, 평면적인 옷감이 몸 위에서 입체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한복을 의복이라기보다 조각이나 건축과 같은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흥미로웠습니다.
뉴욕 한국문화원의 특별전 <현존의 경계>와 런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 한국관 전시에서도 관객들은 몸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 몸 주변에 공간을 만들어 내는 한복의 구조와 여러 겹의 옷이 포개지며 형성되는 깊이와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한복의 여백을 단순히 넉넉한 형태가 아니라 입는 사람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그 움직임으로 완성되는 공간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기억에 남습니다.
색에 대한 반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외 관객들은 먼저 한복 색채의 강한 대비와 리듬, 그 색채가 공간 전체에 만들어 내는 에너지에 반응했습니다. 시각적 호기심이 그 색을 만들어 낸 문화와 철학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에 한복의 색과 이미지를 입힌 미디어 파사드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상징적인 장소에 한국의 전통 색채를 투영하는 작업인 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오방색 가운데 생명과 탄생을 상징하는 청색을 중심으로 브라질 국기와 G20의 색을 연결해 한국과 브라질의 우정과 공존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전통은 익숙한 장소와 소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과 기술을 만날 때 또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보여 준다고 생각했지만, 작업을 이어 갈수록 오히려 그들의 시선을 통해 제가 한복을 다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화는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 속에서 다시 발견되고 확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전시는 한복을 알리는 자리인 동시에, 익숙함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한복의 가치를 낯선 시선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현존의 경계> 전시관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이진희 교수의 모습
<현존의 경계> 전시를 보는 해외 관객들의 모습
Q.
한복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면서도 지금은 일상복, 콘텐츠, 전시,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한복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앞으로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과 사극 속 의상을 넘어 일상복, 공연, 전시, 미디어아트, 디지털 콘텐츠, 공간과 라이프스타일로 더 넓게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외형만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복이 지닌 구조와 정신을 오늘의 생활 속에서 살리는 일입니다. 입기 편하고 오늘날 사람들의 몸과 생활환경에 맞으면서도, 한눈에 한국의 미감과 삶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합니다. 한복이 박물관과 축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리와 상점, 여행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을 때 지속 가능한 생태계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역시 큰 가능성을 열어 줄 것입니다. 기술은 수많은 형태와 조합을 제안할 수 있지만, 그중 무엇이 우리다운지 알아보고 선택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경험과 안목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미래의 한복이 기술로 전통을 지우는 방향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전통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발견하고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전통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다음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살아 있는 자원이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는 세종학당 학습자들이 한복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A.
한복과 한국문화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한복을 직접 입고 걸어 보고 움직여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복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알기 어려운 옷입니다. 몸에 입었을 때 비로소 선과 여백이 살아납니다. 옷고름을 직접 묶어 보고, 걷거나 앉을 때 달라지는 실루엣도 느낄 수 있습니다. 몸과 옷 사이에 만들어지는 공간과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선의 아름다움은 한복의 중요한 미학입니다.
한복을 입고 궁궐이나 한옥마을, 시장이나 상점 등을 직접 거닐어 보셨으면 합니다. 전통 건축과 현대적인 도시, 오래된 시장과 새로운 상점, 장인의 작업과 동시대 예술이 공존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면 한국문화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도 완성된 한복의 형태만 보기보다 옷감의 재료와 직조 방식, 바느질, 색과 문양이 어떤 생활환경과 의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한복의 형태에는 언제나 그것을 입었던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질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한국문화를 정해진 지식이나 정답처럼 외우기보다 스스로 발견하고 질문하며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라의 복식과 생활 문화를 한복과 그 안에 담긴 생활 문화에 비추어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문화는 어느 한쪽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한복을 입는다고 해서 완벽하게 한국인처럼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몸과 문화적 배경, 고유한 감각을 지닌 채 한복과 만나고, 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해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