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이 만난 사람들
세종을 품은 한글운동 60여 년, 한글나라를 꿈꾸며
“이제, 우리말을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한말글문화협회 리대로 대표는 한말(우리말)을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를 외쳐온 한글운동가입니다. 지난 60여 년간 한자 혼용 반대운동과 영어 공용어 반대운동, 우리말 살리기 운동, 한글날 국경일 제정 추진, 국회 휘장과 이름패의 한글화, 서울시 한글마루지사업, 국외 한국어 보급 사업과 국립한글박물관 건립 추진 등 한글운동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 2004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2006년 한글날 한글 발전 유공으로 국무총리 표창,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인 2025년 5월 15일 ‘제44회 세종문화상’ 대통령 표창 등을 받았습니다. 2026년 10월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리대로 대표를 만나 세종을 품은 한글운동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한말글
독립운동의 길,
그 첫걸음
Q.
안녕하세요, 리대로 대표님. <세종학당>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세종학당 독자 여러분, 저는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리대로입니다. 우리말은 한말이고, 우리글은 한글입니다. 한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할 때 우리말이 홀로 설 때 우리 얼도 홀로 설 수 있으며 우리나라가 바로 서고 자주독립국이 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저는 한자로부터 해방된 한글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지난 60여 년간 한글과 세종대왕의 정신으로 나라를 일으키려고 제 한 삶을 한말글 독립운동에 바쳤습니다. 저는 1967년 대학생 때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설립해 박정희 정부의 한글전용정책을 끌어내며 국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72년부터 18년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을 맡아 한자 혼용 반대운동을 했고, 한자로 쓰였던 국회 휘장과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꿨습니다.
1990년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뒤에는 한글날국경일제정 국민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며 2005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법안’ 통과를 위해 힘썼고, 2006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된 뒤 2007년에 중국 절강월수외국어대학에 가서 한국어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어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 뒤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일대를 한글문화 관광지로 만들자는 ‘한글 마루지 사업’을 건의하고, 지금은 영어 마구쓰기 반대, 우리말 살리기, 세종대왕 나신 곳 찾기, 경복궁 광화문 한글 현판 달기 운동 등 한글나라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9월 3일, 재단에서 특강을 진행하는 리대로 대표의 모습
Q.
대표님께서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60여 년간 한글운동을 이어오셨는데요. 평생 한글운동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A.
저는 가난한 농민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기로 아버지와 약속한 뒤 1962년 예산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기 5‧16 군사정부는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적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한자를 섞어서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때부터 농업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거름주기는 施肥(시비), 가지치기는 剪枝(전지), 꽃따기는 摘花(적화)라고 칠판에 한자를 쓰며 가르쳤고, 농업 시간이 한자 시간처럼 느껴져 공부가 재미없었습니다.
그러나 김소월이 한말글로 쓴 시와 이광수의 소설 「흙」, 「사랑」, 「무정」, 「유정」, 심훈의 소설 「상록수」 등을 읽으며 재미를 느꼈습니다. 특히 농촌계몽 민족부흥운동을 다룬 작품들은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제가 농과이기에 축산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고 도서관에서 「축산전서」를 열람해 보니 책 전체가 일본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간신히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전문 서적을 찾았지만, 전문 용어는 한자로, 토씨만 한글로 적혀 있어서 책을 읽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로 제대로 쓴 책이 없다니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때 신문에 한글학자 김윤경 교수가 쓴 ‘잘못된 국어정책’이란 글을 읽고 그분에게 “내가 한글을 살리려고 대학에 가려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 진학을 포기할까 고민이다.”라며 제 뜻과 꿈을 적어 편지를 보냈더니 바로 답장해 주셨습니다. 김 교수님이 “나는 한글을 지키려고 일생을 바쳤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지는데 너 같은 젊은이를 만나니 반갑고 기쁘다. 꿈은 이루어지니 포기하지 말고 꼭 대학에 가서 국어학계에 이름을 남기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용기 내어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생이 돼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설립하면서부터 저의 한말글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이지요.
Q.
대표님께서는 2007년 중국 절강월수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글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등 해외 한국어 교육 현장도 경험하셨습니다. 당시 외국인 학습자들과 교류하며 느낀 경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2006년 국경일이 된 첫 한글날 경축식 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한글날 국경일 행사를 잘 마친 뒤 ‘국외 한국어 실태 조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중국, 일본, 몽골 등으로 실태 조사를 하러 갔습니다. 중국 북경문화원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사람을 모집했더니 희망자가 많이 몰려서 교통경찰까지 동원해 교통 정리를 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가보니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2006년 말에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가서 태권도장 ‘월수태권도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3월 새학기부터 한국어과 교수로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그 대학의 한국문화와 한국어 체험장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한글날이 있는 10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절강월수외대에서 중국 모든 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말하기, 한글 붓글씨, 한국 노래자랑 대회를 여는 한글문화큰잔치를 열었습니다. 한글문화큰잔치는 9회까지 성대하게 열렸으나 10년째 되는 해에 사드 문제와 코로나19 상황이 겹쳐서 교류가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2년 동안 한국어과 학생을 배로 늘렸고 태권도를 그 학교 동양어학부 체육 과목으로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저를 참 좋아해주었는데, 저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때 목도리를 선물해 주어 그날 태권도장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2007년, 절강월수외대 외국문화거리(SPT) 입구에 생긴 월수태권도관
박병천 서예가가 월수태권도관 내부에 쓴 한글 글씨
한글나라,
한글누리글자가
될 날을 위해
Q.
최근에는 케이(K)-팝, 드라마 등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외국인이 많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지속적인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먼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에 관심 가져 주시는 외국인 학습자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참 좋은 글자인데 한국어가 아직 제대로 안 다듬어져 있어요. 여전히 한자가 많이 쓰이고 일본어와 영어가 혼용돼 있어 진정한 국어 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기가 너무 힘들지요.
제가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한글은 진짜 쉬운데 한국말은 배우기 힘들어요” 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마마, 파파를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하나로 쓰는데 한국은 부친, 가친, 선친 등 표현하는 말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고 말이죠. 그때 외국인 학생들에게 참 미안했어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인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어가 지금보다 더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Q.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는 처음 한글을 접하는 학습자부터 한국어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학습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함께 알아갔으면 하는 가치나 정신이 있을까요?
A.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 가장 좋은 글자일 뿐 아니라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자로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입니다. 단군 할아버지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를 국시로 삼았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정신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한글은 사라질 뻔했으나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한글을 지키며 갈고 닦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갑에 단군 할아버지와 세종대왕, 주시경 선생의 사진을 넣고 다닙니다. 이분들이 저에게 국어독립운동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과 세종대왕의 자주독립 정신, 주시경 선생의 겨레사랑 정신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2008년, 562돌 한글날을 기념해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리대로 대표의 모습
Q.
인공지능(AI)과 자동번역 등 언어를 둘러싼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한글과 한국어가 가진 가능성은 무엇이며, 한국어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한국어 학습을 ‘한국어로 말하고 쓰는 것’이라고 정의하지만, 한글로 영어도 공부할 수 있고 ‘한글로 모든 글자를 적을 수 있다’는 길을 한국어 교육의 방향성으로 잡아야 합니다. 저는 오천 년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주시경 선생의 꿈을 실현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우리부터 한말글을 쓰고 세계인도 이 좋은 글자를 쓸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며, 그 역할을 세종학당이 하리라 믿습니다.

Q.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글날’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올해 한글날 100주년 기념을 맞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전 세계 세종학당 학습자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저는 1967년 대학가의 한글전용 운동을 시작으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과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운동, 한말글사랑겨레모임 대표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등을 거쳐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한글날이 없었으면 한글이 살지 못했어요.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분들이 애써서 한글을 지켜주셨고, 한글날마다 모여서 한글을 지키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선열들이 한글만 살린 게 아니라, 우리 민족과 나라도 살렸다고 생각해요. 한말글을 지키고 알리는 일은 한배검 홍익인간 정신과 한임금 세종의 자주독립정신, 한힌샘 주시경의 겨레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온 인류를 복되고 이롭게 하는 큰일입니다.
무엇보다 한글날은 국경일 가운데 진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우리 힘으로 우리말글을 지켜 온 역사를 기리는 국경일인 만큼 세종의 정신을 기억하며 국가 차원에서 큰 잔치도 열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오게 해서 모두 다 신나게 한글날을 축하했으면 합니다. 이제 한글나라가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한글을 온 세계인이 쓸 ‘한글누리글자’가 될 날이 보입니다. 한말글 만세! 한겨레 만세! 한나라 만세!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한 내용으로, 세종학당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