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케이(K) 리포트
시엠레아프에서 만난 ‘압사라’
캄보디아의 영혼을 담은 천년의 춤
저는 찬란한 역사를 품은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세종학당의 박정미 교원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전통춤 ‘압사라(Apsara)’는 처음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연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춤의 역사를 알아가고 학습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압사라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의미를 한글 손 글씨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크메르 제국의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가 자리한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이 신비로움의 연속입니다. 어느 날 오래된 500리엘 지폐에서 발견한 무희들의 모습은 저를 천년의 역사 속으로 안내해 줬습니다. 유려한 몸짓의 무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캄보디아의 전통춤 ‘압사라’를 떠올렸습니다. 앙코르와트 벽면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정적인 조각이 작은 지폐 위에서도 살아 숨 쉬는 듯했습니다. 여러 크메르 문화 가운데 압사라를 소개하고
싶은 것도 이처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춤의 생명력 때문입니다.
사실 이전에 시내 레스토랑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30분짜리 압사라 공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춤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역사는 알지 못했습니다.
압사라 춤이 제게 더욱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그 안에 새겨진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와 회복의 이야기를 알게 된 뒤였습니다. 캄보디아는 20세기 후반 내전 등 사회적 격변을 거치며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잃었고, 왕실 무용 역시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동작과 가르침을 하나씩 모아 춤을 복원하고 다시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이어진 압사라 춤은 제게 캄보디아 사람들이 지켜 온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박정미 통신원(왼쪽에서 세 번째)이 세종한국어 3A 학습자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압사라를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 순간은 세종학당 교실에서 찾아왔습니다. 세종한국어 3A의 마지막 단원인 ‘12과 대중문화와 감상’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에 관한 한국어 어휘와 표현을 가르치던 중, 저는 학습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캄보디아 문화 중 한국 친구들에게 가장 자랑하고 싶은 공연은 무엇인가요?” 학습자들은 입을 모아 답했습니다. “선생님, 압사라 춤이에요!”
한 학습자는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압사라 공연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손가락을 하늘 위로 유연하게 꺾는 동작 하나하나에 자연의 순리가 담겨 있다고 한국어로 설명해 줬습니다. 특히 손끝을 안으로 굽히는 정교한 동작이 ‘땅에 씨앗을 뿌리는 몸짓’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습자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학당에 나와 한국어를 공부하며 저마다의 꿈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씨앗을 뿌리는 무희들처럼, 학습자들 역시 한국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하나씩 심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끝으로 씨앗을 뿌리는 무희들처럼, 학습자들 역시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한국어’라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정성껏 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자부심 어린 학습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며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앙코르와트의 차가운 벽면에서 보았던 압사라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눈앞에 있는 학습자들 의 삶 속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의 문화를 한국어로 소개하는 학습자들을 보며, 이들에게 한국어가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넓은 세상과 나누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캄보디아의 영혼인 압사라 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척박한 땅에 피워낸 천년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어려운 시간을 견디며 전해진 춤과 손끝으로 씨앗을 뿌리는 몸짓을 보며 느낀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당에 나와 한국어를 배우며 미래를 일구는 학습자들이 그 ‘희망의 씨앗’처럼 보였습니다.
박정미 통신원이 압사라 춤 동작을 생각하며 춤추듯 표현한 캘리그래피
이 마음을 담아 압사라 춤의 동작을 떠올리며 춤추듯 글씨를 써 보았습니다. 저는 압사라와 학습자들을 통해 타국의 문화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할 때 교육과 교류도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글로 적은 문구에는 춤에서 느낀 감동과 함께 제게 그 의미를 알려 준 학습자들을 향한 마음도 담았습니다.
글.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세종학당 통신원 박정미
이번 ‘통신원 케이(K) 리포트’에서는 ‘당신의 문화를 한글로 쓴다면’을 주제로, 각 지역의 통신원이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국의 문화와 정서를 잘 보여주는 문화예술 작품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