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은 한국의 영웅이었습니다”
참전용사의 기억에서 세종학당과의 만남까지,
한국과 이어진 특별한 인연
1950년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인연은 세대를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용기는 가족과 후손들에게도 깊은 기억으로 남아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여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인 필리핀 케손시티2 세종학당의 올리버 존 C. 퀸타나 학당장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종학당의 캐시 워버 가드너 학습자를 만났습니다. 가족이 간직해 온 기억과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그리고 세대를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호국보훈의 달, 후손이 전하는 감사와 기억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신 가족분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올리버 존 C. 퀸타나(이하 올리버 학당장) 안녕하세요. 저는 필리핀 케손시티에 위치한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올리버존 C. 퀸타나(Oliver John C. Quintana)입니다. 현재 같은 대학에서 세종학당인 케손시티2 세종학당의 학당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신 고(故) 멜레시오 S. 퀸타나(Melecio S. Quintana) 예비역 대령의 손자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필리핀 한국전 파병부대인 PEFTOK 소속 제14대대 전투단(BCT), 일명 ‘어벤저스(The Avengers)’ 부대에서 복무하셨습니다.
A. 캐시 워버 가드너(이하 캐시 학습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캐시 워버 가드너(Kathy Woeber Gardner)입니다. 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기업 전문 부티크 로펌 몽고메리 퍼시픽 LLP(Montgomery Pacific LLP)의 공동 창립자이자 파트너로, 국경 간 벤처캐피털 투자와 인수합병(M&A)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3년 9월부터 샌프란시스코 한인회(San Francisco Korean Center Inc.) 이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이사회에서 유일한 비한국계 이사라는 점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신 제 아버지 토마스 J. 워버 주니어(Thomas J. Woeber, Jr.)는 1952년 6월부터 1953년 10월까지 미 육군 정보부 소속 중위로 한국에서 복무하셨습니다.
올리버 학당장의 할아버지인
고(故) 멜레시오 S. 퀸타나 예비역 대령
캐시 학습자의 아버지인
토마스 J. 워버 주니어의 중위 재직 당시 모습
Q. 가족이 바라보는 참전용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나요? 어린 시절 참전용사께서 들려주신 한국 이야기나, 가족들에게 전해주신 기억이 있으신가요?
A. 올리버 학당장 저는 할아버지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바로 ‘PEFTOK 장학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재학 시절 모두 PEFTOK 장학생으로 선발돼 매 학기 학업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고, 그 과정을 알아보며 할아버지의 복무와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등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필리핀 원정군(PEFTOK)의 역사적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후손을 지원하는 장학 제도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세상을 떠나셔서 직접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할아버지께서 가족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와 이후 PEFTOK 재향군인회(PVAI)에서 만난 다른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접한 것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950년대 초반 한국의 모습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전쟁으로 마을들이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당시의 상황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열대 국가인 필리핀에서 온 군인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했던 한국의 겨울 추위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하셨는데 특히 그 차가운 겨울을 견디는 일이 적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14대대 전투단이 치른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마스 힐 전투에서는 많은 필리핀 군인들이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큰 용기를 보여주었다고합니다. 한편으로는 필리핀 배우들과 공연단이 부대를 찾아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었던 따뜻한 기억도 전해주셨습니다.
A. 캐시 학습자 저와 제 형제자매는 아버지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지 한참 뒤에 태어났지만, 아버지께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기여하셨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셨다는 것을 알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한국에서 복무하던 당시의 사진과 신문 기사 스크랩 등 여러 기념 자료를 자주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덕분에 아버지의 한국전쟁 참전 경험은 우리 가족 이야기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고(故) 멜레시오 S. 퀸타나 예비역 대령의 한국전쟁 당시 모습
Q. 한국의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기입니다. 이 의미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참전용사의 후손으로서 이 시기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A. 올리버 학당장 저에게 ‘호국보훈의 달’은 단순한 연례 기념 기간을 넘어섭니다. 필리핀과 대한민국의 우정이 단순한 외교나 경제 협력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공동의 희생과 용기, 그리고 전우애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양국의 유대는 자신의 나라가 아님에도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필리핀 젊은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인정이나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던 시기에 그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라고 믿었기에 싸웠습니다.
매년 6월이 되면 저는 할아버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한국인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생명을 걸었던 수많은 필리핀 참전용사들을 함께 기억합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이 됐습니다. 동시에 6월은 한국이 보여준 감사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의 참전 덕분에 저는 PEFTOK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고,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전쟁 당시 함께 싸웠던 이들을 얼마나 깊이 기억하고 존중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전사자들을 기리며 헌화했던 순간은 제게 매우 큰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가 아니라, 용기와 희생, 감사와 평화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A. 캐시 학습자 우리 가족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최대한 많이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의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다른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릴 때는 주로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인 11월을 중심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6월이 지니는 의미를 알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 올리버 학당장에게 듣는 이야기
Q. 세종학당 학당장으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으신가요? 그 경험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돌이켜보면 제가 세종학당 학당장이 된 것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진로라기보다,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의 참전에서 시작된 여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석사 과정을 서울에서 마친 뒤 필리핀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에 새롭게 마련된 한국학 프로그램(Korean Studies Program, KSP)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을 단순히 언어나 한류 문화가 아니라 역사와 양국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2016년에는 ‘Revisiting the Korean War: History, Memory, and its Implications on Contemporary Nation Building’을 주제로 열린 제3회 아테네오 한국학 학술대회의 기획을 맡았습니다. 특히 PEFTOK 참전용사들을 모교로 초청해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던 것은 제게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역사는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처음 만났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교과서 속 역사가 인간의 삶과 용기, 희생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저는 아테네오 한국학 프로그램 책임자로 임명돼 한국전쟁의 기억을 보존하고 필리핀과 한국의 관계를 강화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당시 PEFTOK 재향군인회 회장이었던 매시모 P. 영 소장을 초청해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며 학생들과 일반 대중이 역사적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아테네오에서 필리핀·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를 다루는 최초의 선택 과목 중 하나를 개발해 지금까지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외교, 현대적 이슈뿐 아니라 양국 관계의 역사적 기반도 함께 다룹니다. 특히 K-팝과 K-드라마, 한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필리핀 군인들이 한국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함께 싸웠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후 케손시티2 세종학당의 학당장으로 부임하는 뜻깊은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저에게 세종학당은 단순한 언어 교육 기관이 아닙니다. 언어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열쇠이며,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가치, 그리고 양국의 깊은 우정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필리핀과 한국의 관계는 관광이나 한류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필리핀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을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점입니다. 세종학당은 한국어교육과 다양한 문화·학술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전해 나갈 것입니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에서
‘한국-아세안 관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제4회 필리핀 케손시티2 세종학당 수료식’ 기념사진
Q. 학당장님께서는 오랫동안 필리핀 한국전 참전용사(PEFTOK)와 관련된 학문적 연구와 현장 활동을 통해 많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만나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이야기나, 한국전쟁이 한 사람의 삶에 남긴 영향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접해왔지만,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한 세대의 희생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직접 목격한 경험입니다.
가까운 친구인 켄 구티에레즈(Kenn Gutierrez)의 할아버지 엘레우테리오 구티에레즈 시니어는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한국전 파병군(PEFTOK) 제2대대 전투단(BCT, Black Lion) 소속으로 18세의 나이에 참전하셨습니다. 켄은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국가보훈부), 한국전쟁기념재단, 한국외국어대학교가 공동 지원하는 UN 한국전쟁 기념 장학 프로그램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10년 이상 한국에서 생활하고 근무한 뒤, 현재는 필리핀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동북아시아과에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인 제나 디존(Jenna Dizon)의 할아버지 후안 조아퀴노 디존 대위는 한국전쟁 당시 제19대대 전투단 ‘블러드하운즈(Bloodhounds)’에서 복무하셨습니다. 제나 역시 같은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는 메콩강 지역 개발 사업 등 국제개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켄과 제나, 그리고 저 자신의 여정을 돌아볼 때마다 저는 한 가지를 깊이 깨닫습니다. 할아버지 세대의 희생은 단순히 전쟁의 승리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전쟁터로 향했던 젊은 군인들의 손자 세대는 이제 총이 아닌 책을 들고 한국을 찾아 배우고, 우정을 쌓으며, 두 나라의 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국전쟁의 진정한 유산입니다.
저는 유산이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조부 세대가 지키고자 했던 평화와 자유, 우정, 국제협력의 가치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켄은 외교관으로, 제나는 국제개발 전문가로, 저는 교육자이자 연구자, 그리고 세종학당 학당장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의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전용사들이 50~6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호텔 창밖을 바라보며 “이곳이 정말 우리가 기억하던 그 한국이 맞느냐”고 묻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은 고층 빌딩과 첨단 기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로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가장 감동시킨 것은 눈부신 발전보다 한국 국민들의 환대와 감사였습니다. 젊은 세대와 군인, 시민들이 한결같이 전쟁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참전용사들은 한국이 자신들을 잊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012년 6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올리버 학당장과 그의 친구 제나 디존, 켄 구티에레즈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과 함께 필리핀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헌화 중인 모습
Q. 참전용사의 후손으로서 가족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한편, 연구자로서 한국전쟁과 참전용사들의 역사와 기억을 연구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학당장님께 가장 크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요?
A. 할아버지의 손자로서의 삶, 그분의 참전으로 이어진 장학 경험과 한국 유학, 다른 참전용사 후손들과의 만남, 그리고 현재 교육자이자 세종학당 학당장으로서 PEFTOK의 유산을 전하는 역할까지 돌아보면, 제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깊은 자부심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PEFTOK 참전용사들을 단순히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가 아니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나섰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에서 아직 회복 중이었지만, 그들은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믿음으로 국경을 넘어 봉사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입니다.
둘째는 우정과 외교, 국제협력의 지속적인 가치입니다. 한국전쟁은 국가 간 관계가 결국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필리핀과 한국의 우정은 회의실이나 외교 협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공동의 희생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됐습니다. 오늘날 그 우정은 교육과 문화 교류, 학술 협력, 외교,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학생으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세종학당 학당장으로서 그 관계를 직접 경험해 왔으며,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협력은 모두 70여 년 전 참전용사들이 시작한 우정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기억의 책임입니다. 현재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를 양성하면서 이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기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야기하고, 가르치고,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참전용사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는 지금, 그 책임은 후손과 교육자, 연구자, 기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기념비나 추모 행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실과 연구 현장, 다음 세대와의 대화,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는 가치와 행동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PEFTOK의 역사를 가르치고, 필리핀과 한국의 우정을 이어갈 때마다 그 유산은 계속 살아 움직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용기에 대한 감사, 필리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장학과 추모 프로그램, 그리고 지속적인 우정을 통해 그 마음을 이어가는 한국에 대한 감사, 그리고 저 역시 이 공동의 역사를 이어가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입니다.
2015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올리버 학당장
◇ 캐시 학습자에게 듣는 이야기
Q. 처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느꼈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A. 저는 한국인 아들 테오를 입양한 뒤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돌보고 로펌을 운영하다 보니 여러 해 동안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202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세종학당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친절하게 지도해 주셨고, 늘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셔서 저만의 속도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세종학당에는 한국인 배우자가 있는 학습자들이 많아 서로 교류하며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입양을 결정할 때 참전용사이신 아버지와의 인연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입양 이후 한국과의 인연이 가족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들려주세요.
A. 남편과 저는 둘째 아이를 입양하기로 계획하면서, 아버지의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이어진 한국과의 인연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아들 테오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떠날 무렵은 어머니께서 막 세상을 떠나신 직후였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이 중요한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온 가족이 서울에 머무르며 대한사회복지회와 테오의 위탁가정, 그리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한국분들이 아버지의 한국전쟁 참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셨고, 그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우리 가족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6년, 서울에서 테오를 처음으로 만난 캐시 학습자 아버지의 모습
Q. 한국에서 태어난 아드님을 키우면서 한국문화와 언어를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A. 테오는 한 살 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우리 가족의 품으로 왔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하던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이러한 인연은 테오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문화를 더 배우고 테오가 또래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한국인 어머니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들은 지금도 저의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아이들은 토요일 한국어 수업과 한국문화 캠프, 여름 캠프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테오는 고등학생 때 미네소타주 콩코디아 언어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의 한국어 몰입형 캠프에도 참가했습니다. 현재 재학 중인 오리건대학교에서도 한국어와 한국사 수업을 들을 계획이며, 앞으로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입양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테오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한사회복지회를 방문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앞으로 테오가 서울에서 공부하게 된다면,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그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11년, 테오를 입양한 이후 처음으로 서울을 다시 방문했을 당시 모습
◇ 참전의 유산, 오늘의 대한민국
Q.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으로서 바라본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또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남긴 의미를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올리버 학당장 오늘날 제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단순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 강국이나 기술·문화·혁신을 이끄는 국가를 넘어섭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도 가장 어두운 순간에 의해 영원히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제 할아버지가 기억하던 한국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였습니다. 파괴된 도시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대학원생이자 한국학 연구자로, 또 한국에서 생활하며 회복과 성장, 그리고 세계와 연결된 오늘날의 한국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세대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기억은 ‘회복과 재건’이라는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필리핀과 한국의 관계 역시 매우 의미 있게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은 바다를 건너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젊은 군인들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필리핀에 다양한 도움과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태풍 하이옌(Yolanda) 당시 가장 먼저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던 일은 물론, 개발과 교육 협력,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필리핀 노동자와 학생, 전문인력의 모습에서도 양국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때 필리핀 군인들이 전쟁터로 향했던 한국은 이제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삶을 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나라가 됐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경제 성장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와 용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켜 왔습니다.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양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시민 참여라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서로의 경험을 배우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단지 한 전쟁에서 한 나라를 지켜낸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은 7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필리핀과 한국의 우정, 그리고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A. 캐시 학습자 테오를 입양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저희는 아버지께서 전쟁 당시 기억하고 계시던 서울의 여러 장소를 함께 둘러봤습니다. 또한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했는데, 아버지께는 매우 감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남편과 함께 한국의 첨단 산업 현장도 둘러보셨고, 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이뤄낸 놀라운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이룬 발전과 위상에는 모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 국민을 깊이 존경합니다. 한국인의 자부심과 성실함, 회복력,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늘 큰 감동을 줍니다. 테오 역시 자신이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이어가고 있는 훌륭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재향군인회(PVAI) 단체를 만난
올리버 학당장의 모습
캐시 학습자의 딸인 마리아나의
대학 졸업식에 함께 모인 가족의 모습
Q.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로 기억되고 있지만, 후손들에게는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전해지기를 바라시나요?
A. 올리버 학당장 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역사책 속 군사적 사건으로 남기보다, 필리핀 국민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정체성의 일부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교육기관, 그리고 PEFTOK 재향군인회(PVAI)와 같은 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박물관과 기념관, 기록 보존 사업을 통해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 대사관과 문화원, 세종학당재단 등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평화, 국제연대의 가치도 함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많은 젊은 필리핀인들에게 한국전쟁은 70여 년 전의 먼 역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전쟁이 남긴 용기와 평화, 민주주의, 국제연대의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가 전쟁을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과 평화를 위해 치러진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생존한 참전용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지금, 그들의 증언과 사진, 일기, 편지, 그리고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그분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는 다시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교육자이자 세종학당 학당장으로서 한국을 가르치고 PEFTOK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전하며, 필리핀과 한국을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 유산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특정 기념일에만 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과 학문, 우정과 봉사를 통해 매일 실천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미래 세대가 참전용사들을 단순히 먼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사람들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의 시대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은 더 이상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망각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그들이 남긴 가치를 실천하며, 필리핀과 한국의 우정을 이어가는 한 그들의 희생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도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참전용사들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A. 캐시 학습자 저는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한민국을 지켜낸 수많은 참전용사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한국전쟁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와 오늘날 대한민국이 성장하기까지 있었던 희생과 헌신에 대해 더 많이 배우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은 테오를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준 대한민국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테오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큰 축복으로 여기고, 그 뿌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