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이 큰일입니다.
마당을 쓸면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듯이”
보이지 않을까? / 이적지 / 보이지 않던 것들이 / 들리지 않을까? / 이제금 / 처음 태어나는 소리 / 저만큼 오네 / 처음 보는 사람 / 그러나 오래 / 보고 싶었던 사람 / 당신이 오네.
봄을 맞이하러 나간 길목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시를 쓰며 반평생 넘게 걸어온 그를 만났던 날, 문학관 앞마당엔 영춘화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나태주풀꽃문학관 ‘시인의 집’
앞에 핀 영춘화
‘시인의 집‘ 마당 풍경
(사진 제공 = 나태주풀꽃문학관)
「풀꽃」의 전문이 새겨진 석문
(사진 제공 = 나태주풀꽃문학관)
◇ 배움은 원래 알쏭달쏭한 여정이라네
Q. 봄이 옵니다. 시인께서는 ‘시작’을 어떤 의미로 느끼고 계신가요?
A. 시작은 출발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의하면 삼십에 이립(而立)이라 했지요. 대강 사람 나이로 스무 살 무렵부터는 시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말하자면 자신의 여행길을 떠나는 거예요. 여행을 한다면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는 것이 시작의 의미겠지요. 1년으로 본다면 시작은 1월 1일인데 그것은 열두 달로 따진 것이고 자연의 순환으로 본다면 봄이 아닐까요. 그래서 봄은 시작의 계절이고 겨울은 마치는 계절이 아닐지요.
Q. 세종학당 교실도 새 학기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A. 떨리는 마음,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마음. 그것 자체가 이미 새로운 것이에요. 새로운 것을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해요. 현대사회로 오면서 떨리는 마음을 갖는 일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눈물도 줄어들었고요. 떨리고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한번 펴 보세요.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처럼, 알쏭달쏭한 세상으로 가는 듯이 말이죠. ‘알쏭’은 아마 알기도 하고 ‘달쏭’은 모르기도 하고. 알까 모를까 그런 신기한 세상을 향해 떠난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 ‘기적의 글자’로 쓴 시
Q. 시인께서 바라보는 한글이란 무엇입니까?
A. 『총, 균, 쇠』 저자의 말을 빌리면 모양은 한자를 쓰던 시대에 사람들이 만들었으므로 한자를 닮아 네모져요. 모음과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고 글자의 짜임은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래서 한글은 소리글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음 문자의 큰 줄기인 알파벳과도 같아서 한글이야말로 세종대왕 시절부터 국제화를 예약한 것이나 다를 바 없어요. 한글은 기적의 글자입니다. 그런 글자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축복이에요. 일곱 살에 한글을 배워서 오늘까지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데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Q. 수천 편의 시를 쓰셨어요. 짧고 간결한데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A. 스스로 자신의 시를 살리기 위한 생존 방법이죠. 어떻게 써야만 한글로 쓴 시가 살아남느냐 하는 것인데, 짧고 단순하고 쉽게 쓰는 거예요. 나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아야 합니다. 나에게만 좋으면요? 그 사람이 그걸 가져가지 않습니다.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Q. 시가 시로서 살기 위한 생존 전술이다?
A. 짧고 쉽다는 것은 사실 시의 원초적인 특성입니다. 그것을 나태주라는 사람이 허덕대다 겨우겨우 늙어서 찾아낸 거예요. 여전히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고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풀꽃」입니다. 7~8년 전쯤의 일인데 펜클럽(국제 문학단체) 초청으로 아프리카 알제리에 강연을 갔어요. 알제리의 젊은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나한테 와서 두 가지를 물었어요. 나태주 맞습니까? 그리고 풀꽃 쓴 사람 맞습니까? 그 물음에 놀랐어요. 세종학당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세종대왕 이름을 딴 학당인데 놀랍잖아요.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세종학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을 배웠다는 것이!
강연 중인 나태주 시인의 모습
(사진 제공 = 한국문학번역원)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마주한 마음들: 한국문학, 우리를 잇다‘ 행사 장면
(사진 제공 = 한국문학번역원)
Q. 해외 독자들 반응도 궁금합니다.
A. 지난해 11월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행사에 초청돼 일본 도쿄를 방문했어요. 일본 땅에 가서 독자들을 직접 만났어요.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배운 일본인들이 떼를 지어 찾아와 이야기도 청하고 내가 쓴 시집을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요. 내가 그 자리에서 결심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로 읽는 시집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내 주겠다고요.
◇ 시와 천천히 걷는 법
Q. 한국말로 된 시를 읽으면 배우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A. 그 나라의 언어는 문화나 정신을 담은 혼이라고 볼 수 있죠.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한국 사람의 모든 것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겉모습과 관계없이 한국인이 돼 보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말이 있어요. 글과 말 중에 글은 배우기 쉬워도 말은 어렵다고들 해요. 다 외국인들이 하는 말이에요. 여기에 대한 노력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아요.
Q. 지난해 필사 관련한 책을 내셨던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A. 필사가 요즘 유행이 됐어요. 본래 문학 공부의 기본이 필사입니다. 그러니까 컴퓨터로 쓰면서 후루룩 읽는 게 아니라 노트에 쓰면서 글자를 내 손에 배기는 겁니다. 또 하나는 감상의 기본이기도 해요. 창작자라면 ‘아! 나도 이처럼 써야겠다’ 각오를 할 것이고, 감상자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Q. 필사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A. 우선 한 번 읽습니다. 그 다음엔 소리를 내면서 쓰는 거죠. 소리를 내며 읽을 땐 귀가 한 번 더 듣습니다. 즉 글을 소리 내 읽으면서 필사를 하면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읽은 효과가 나요. 그러니까 일석삼조(一石三鳥)인 거죠.
Q. 필사하면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얻는 게 많겠네요.
A. 당연하죠. 필사하면서 시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겁니다.
나태주풀꽃문학관 전시관에 걸린 나태주 시인의 초상
Q. 시인께서도 교단에서 40년 넘게 학생을 가르치셨죠. 마지막으로 전 세계 세종학당 교원께 한 말씀 전해주신다면.
A. 여러분이 하는 일이 위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들려드리고 싶은 시가 있어요.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내 시의 첫 문장인데 ‘한글의 한 글자를 가르쳤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움직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바꿀 수 있겠네요. 마당을 쓸었다는 건 작은 거예요. 내가 한글을 가르치는 데 수고한 것을 큰일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한국을 알리는 일이고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라 생각하시면 마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큰일만이 큰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이 큰일입니다.
※ 이 시는 ‘나태주체’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