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과정의 의미와 전략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번역전공
임형재 교수와의 만남
지난 9월 14일, 세종학당재단의 ‘영어권 지역 세종학당 통번역과정 교원 연수 온라인 워크숍’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과정의 의미’를 강연한 임형재 교수를 만나 AI(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과정이 지닌 가치와 현장 적용 방안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임형재 교수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월간 똑똑’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함께 교수님의 연구 및 강의 분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번역전공에서 연구와 강의를 맡고 있는 임형재입니다. 제 연구 방향은 외국인 학습자를 위한 한국어 통번역 교육 체계화입니다. 특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과 ‘전문 분야 통번역 교육’의 접목, 그리고 AI(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통번역사의 새로운 역할 변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강의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통번역학의 이해를 기반으로 통번역사를 위한 AI(인공지능)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어 교원을 대상으로 통역‧번역 교육을 위한 역량 강화에도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또한 예비 한국어 통번역사 양성을 위한 교재와 훈련 모형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언어권의 한국어 통번역 교육이 글로벌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지난 6월, 베트남 지역 세종학당 통번역과정 교원 연수 온라인 워크숍에서 특강을 진행한 임형재 교수
지난 9월 14일, ‘영어권 지역 세종학당 통번역과정 교원 연수 온라인 워크숍’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과정의 의미’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해 주셨는데요. 이번 특강에서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셨나요?
이번 특강은 ‘왜 21세기, AI(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교육을 말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21세기 글로벌 환경과 디지털 혁신 속에서 통번역은 단순히 언어 전환을 넘어 문화 간 매개 능력(또는 중재 능력)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한류 확산, 글로벌 기업 활동, 다문화와 다언어 사회의 도래가 한국어와 다양한 언어 간의 통번역 현장을 크게 넓히고, 그 필요성을 높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통역과 번역의 기능을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에 이은 다섯 번째 기능, 즉 ‘전환(transfer)’으로 제시하며 한국어 학습자가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소통의 중재자로 성장할 수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번역 수행 능력 습득 연구 모델(Process of Acquisition of Translation Competence and Evaluation, PACTE)과 유럽 번역 석사 공통 교육 기준(European Master’s in Translation Competence Framework, EMT) 모델을 기반으로 학습자의 통번역 역량이 언어 능력 외에도 문화적 이해, 정보 활용, 전략적 의사결정, 도구 활용 역량이 통합된 다차원적 능력임을 짚었습니다. 교육적으로는 ‘유의미한 번역(pedagogical translation), 통역 역할극, 기계번역 후편집(post-editing)’과 같은 활동이 학습자의 비판적 사고력과 메타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여러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종학당 통번역 교육 과정의 목표로 ▲중·고급 학습자를 위한 실천적 훈련, ▲적응력 중심 훈련, ▲문화적 이해 확대, ▲교원 통번역 교육 역량 강화, ▲국제적 확장과 문화 중개자 양성을 제시하며, 현장 교원들이 이러한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수업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강조했습니다.
지난 9월 14일, 영어권 지역 세종학당 통번역과정 교원 연수 온라인 워크숍에서 특강을 진행한 임형재 교수
이번 워크숍에서 다뤄진 내용들이 실제 영어권 지역의 한국어 통번역 교육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세종학당의 교원들이 실제 수업 시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영어권 세종학당 교원들은 학습자의 언어 배경과 수업 환경을 고려해 ‘한국어 중심 통번역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실제 교실에서 적용 가능한 교수·학습 전략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첫째, 목표어 기반 지도 전략입니다. 한국인 교원은 학습자의 모국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도 통번역 수업을 이끌 수 있습니다. 이때 핵심은 한국어 원문을 의미 단위로 분석(semantic chunking)하고, 독자와 번역 목적에 따라 직역‧의역‧삽입‧삭제 등 다양한 전략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짧은 안내문을 번역할 때, 직역과 의역 버전을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대상 독자에게 더 적합한지 토론하도록 해 바람직한 번역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는 기능주의적 기반의 훈련으로 번역의 과정과 목적에 대한 학습자의 이해와 인식을 강화합니다.
둘째, AI(인공지능) 및 디지털 도구의 활용입니다. 영어권 학습자들은 챗GPT, 제미나이, 구글 번역기, 파파고 같은 거대 언어 모델(Lage Language Model, LLM)과 신경망 기계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 기반의 번역기를 자주 활용합니다. 교원은 이를 배제하기보다는 교육적으로 수용해 기계 번역 결과를 함께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후편집(post-editing)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더 좋은 번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언어 전환의 원리를 학습하며, 동시에 비판적 정보 문해력을 기르게 됩니다.
셋째, 통역 훈련의 단계적 접근입니다. 워크숍에서는 통역을 위해 쉐도잉(shadowing), 청해 후 요약, 역순 전달(reverse rendition) 같은 실습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 짧은 발화를 듣고 요점을 영어로 요약한 뒤, 다른 학습자가 다시 한국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교원은 학생들의 이해 정도와 누락된 정보를 간접적으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넷째, 팀 티칭과 현지 교원 협력입니다. 한국인 교원과 현지 영어권 교원이 협력하면 가장 효과적인 통번역 수업이 가능합니다. 한국인 교원은 한국어 텍스트 분석과 번역 전략 등을, 현지 교원은 영어 표현의 자연스러움과 문화적 뉘앙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러한 협업은 학습자에게 양방향의 피드백을 제공하고 언어 간 차이와 중재 전략을 습득하도록 해 통번역을 위한 역량을 균형 있게 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권 세종학당 교원들은 수업에서 ▲목표어 기반 교수, ▲AI(인공지능)와 컴퓨터 보조 번역(Computer-Assisted Translation, CAT) 도구 활용, ▲통역 훈련 단계화, ▲협력적 교수 모델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단순히 번역 결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번역의 목적과 전략,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스스로 설명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워크숍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서 통번역 과정의 의미’를 주제로 특강 중인 임형재 교수
영어권 지역 세종학당에서의 통번역 교육 과정 운영 시,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적 뒷받침은 무엇인가요.
영어권 세종학당에서 통번역 과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크게 네 가지 측면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교원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 연수입니다. 통번역 교육은 일반적인 한국어 수업과 달리 이중 언어 능력과 문화적 중재 역량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원이 전문 통번역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종학당재단 차원에서 정기적인 통번역 교원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 통번역학 이론, 교수법, 평가 기준, AI(인공지능) 도구 활용 등을 교원들이 실제로 익힐 수 있게 지원해야 합니다. 온라인 강의, 모의수업, 멘토링 등 다양한 형태가 병행되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둘째, 표준화된 교재와 평가 도구의 보급입니다. 현재 세종학당에서 개발된 교재는 있지만 영어권 학습자의 언어적‧문화적 특수성을 반영하거나 학습자 역량별 맞춤 교재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법률, 의료, 비즈니스 등 전문 분야별로 사례와 어휘가 다른데 이를 반영한 모듈형 교재 등의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학습자 평가 시, 평가 기준과 수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평가표(루브릭)에 따라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게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루브릭 기반 평가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특히 AI(인공지능) 기반의 정량적 평가나 다차원 품질 척도(Multidimensional Quality Metrics, MQM), 번역 결과 평가 일반 지침(ISO 5060)을 응용한 정성적 평가 도구가 개발된다면 교원들은 학습자의 성과를 보다 신뢰성 있게 진단하고 피드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현지 학습자 데이터 수집과 공유 플랫폼입니다. 학습자의 번역 오류 유형, 통역 수행 기록, 교수·학습 모범 사례 등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전 세계 세종학당 교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 교환을 넘어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 AI(인공지능) 교수 도구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학습자들의 실제 번역 결과 기반 자동 피드백 시스템’은 교원의 부담을 줄이고 학습자의 자기 점검을 도울 수 있습니다.
넷째, 정책적 예산 지원입니다. 통번역 교육은 현지에서 관광, 비즈니스, 공공서비스 등과 직결되기 때문에 현지 사회의 업무 직무 능력과 연결해 다양한 협력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종학당이 현지 공공기관이나 대학과 협력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가능하다면 학습자는 실제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경험할 수 있고, 이는 곧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 각 지역 학습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한국어 통번역 과정을 운영할 때, 초·중급 단계 학습자들이 고급 수준, 나아가 통번역 학습까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떤 교육적 접근이나 전략이 필요할지 제언 부탁드립니다.
초·중급 단계 학습자가 고급 수준으로 성장해 통번역 학습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 통번역 목적 한국어 교육 → 통번역 훈련’으로 이어지는 ‘통합 교육 과정’ 설계가 필요합니다.
첫째, 언어 기능 학습과 번역 활동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읽기 수업에서 간단한 문장을 모국어로 옮겨보거나 말하기 수업에서 역할극을 통해 짧은 통역을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학습자가 통번역을 별도의 기술이 아닌 한국어 학습의 연장선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점진적 난이도 조정입니다. 초급 단계에서는 간단한 안내문, 표지판, 일상 대화를 통번역하는 과제로부터 시작해서 중급 단계에서는 뉴스 기사, 짧은 인터뷰 등으로 확장합니다. 고급 단계에서는 실제 전문 분야 텍스트와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통역과 번역이 온전한 활동 모델로 적용돼 ‘통번역 목적의 한국어 교육’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셋째, 학습 동기 유발 장치입니다. 중·고급 단계의 학습자는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더이상의 학습 동기를 상실하거나 학습의 정체감을 호소하곤 합니다. 이때 통번역 과정을 통해 실제 통번역 프로젝트 참여하거나 포트폴리오 제작, 오류 수정이나 후편집 활동에 참여하면 직업적 직무 능력 필요성과 성과에 대한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고, 이는 지속적인 학습 동인으로 이어집니다.
넷째, 더 깊은 문화적 이해와 비판적 사고 훈련이 병행돼야 합니다. 번역은 단순 언어 변환이 아니라 맥락과 문화를 중재하는 행위이므로 학습자들이 지속적으로 문화소(번역 시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문화 고유의 요소), 화행 전략(번역 시 원문에서 실제 의도한 행위를 번역 언어의 문화적 관습에 맞게 재현하는 방식), 사회적 담론에 노출돼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습자는 언어문화의 중개자로서 성장하며, 고급 단계에서의 통번역 훈련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