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로 전하는 전통예술의 미학과 공동체 정신
세종문화아카데미 사물놀이 문화전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원민 교수와의 만남
풍물과 꼭두각시놀음 등 전통연희를 연구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김원민 교수는 문화전문가로서 세종문화아카데미를 통해 세종학당 학습자들을 비롯한 전 세계의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며 한국적 정서와 전통예술의 미학을 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연주 기술을 넘어 사물놀이의 핵심적 가치인 공동체 정신을 교육 현장에 녹여내고 있는 김원민 교수를 만나 세종문화아카데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전통예술 교육의 가치와 세계화를 향한 비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원민 교수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월간 똑똑’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 김원민입니다. 현재 저는 풍물과 꼭두각시놀음 등 전통연희를 실기와 이론으로 지도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과 실험적 공연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시흥시립전통예술단 예술감독으로서 전통과 현대 창작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무대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있습니다.
‘전통연희’라는 용어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전통연희’는 풍물, 탈춤, 무속, 남사당놀이 등 과거 전통사회의 공동체 놀이 문화와 전문 예인들에 의해 전승된 우리 고유의 공연예술을 뜻합니다. 오늘날에는 사물놀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으로도 확장됐죠. 가무악희(歌舞樂戱)의 종합예술 형태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한국적 정서와 미학을 직관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예술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해외 대학과 예술가들과의 교류, 워크숍, 세종학당 전문가 파견 강의를 통해 한국 연희의 세계화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예술대학에 사물놀이 강좌 개설을 위해 노력하며,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 학습자들과 함께 온라인 교육 영상과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전통예술 교육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이해’를 주제로 강연 중인 김원민 교수
교수님께서는 세종문화아카데미의 문화전문가로서 사물놀이 강좌를 진행하며 외국인 학습자들과 만나오고 계신데요. 강좌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세종문화아카데미에서 사물놀이 강좌를 맡아 학습자들이 단순한 연주 기술 습득을 넘어 한국적 정서와 전통예술의 미학,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통합적 교육을 지향해 왔습니다.
사물놀이는 1970년대 말 풍물굿에서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전통 타악 앙상블로, 네 명 이상의 연주자가 어우러져 연주합니다. 그 근본인 장단(리듬)과 타악기의 음악적 본질은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쉽게 접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요소이기에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전통 음악은 서양 음악과 달리 장단의 구조가 독자적 음악적 형식을 이뤄 왔습니다. 따라서 장단을 익히는 과정은 한국의 정서와 음악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물놀이는 전통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문화적 매개체였던 풍물굿에서 출발해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예술로 공동체 정신은 사물놀이의 핵심적 가치입니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존중과 배려로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저는 해외 세종학당 학습자들을 지도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려는 노력’ 없이는 사물놀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또한 구름(雲), 비(雨), 바람(風), 천둥 번개(雷) 같은 자연 현상을 닮은 전통 타악기의 소리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사계절의 정취를 전달하고 음양오행 다섯 방위 색의 사물놀이 의상을 통해 전통 복색에 담긴 의미와 자연의 순환적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전통 장단을 익힐 때는 악보가 아닌 ‘구음’이라는 독특한 구전 방식을 활용합니다. 장단 소리를 입으로 직접 내며 익히는 방법으로 한국어 학습에 관심이 많은 해외 세종학당 학습자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덩’, ‘따’ 같은 장구 소리를 입으로 따라 하며 한국어 발음과 장단 호흡을 동시에 체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별달거리’ 장단에서 “올해도 대풍이요, 내년에도 풍년일세”,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대낮같이 밝은 달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언어와 리듬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 근저에는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세계화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한국문화를 깊이 있고 진정성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세종학당 세종문화아카데미가 우리 문화를 세계에 보급하는 중요한 거점임을 인식하고, 열정과 책임감을 느끼며 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중국 시안 세종학당에서 열린 김원민 교수의 사물놀이 강좌 모습
실제 경험하신 세종학당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지, 세종문화아카데미의 사물놀이 강좌에 참가한 현지 학습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여러 해외 세종문화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진행하며 흥미로웠던 점은 사물놀이 강좌에 참여하는 학습자들 가운데 젊은 여성층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분명 케이팝과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문화 전반에 관한 관심이 확산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학습자들에게 참여 동기를 물으면 한류를 계기로 한국에 애정을 갖게 됐고,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전통문화로 이어졌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장단을 배우고 연주하는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한국 장단의 독특한 리듬감에 빠져들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신명 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저 역시 큰 감동을 받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경험은 2019년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에서의 강의입니다. 당시 10여명의 학습자들은 사물놀이를 접해본 적은 있었지만 지도해 줄 강사가 없어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선생님이 온다.”라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서 저를 기다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3일간의 집중 수업을 마친 학습자들은 국가 귀빈 행사 무대에 초청돼 당당히 공연을 펼쳤습니다.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흘리던 학습자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학습자들은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고, 콜롬비아 교민 행사와 남미 국가 초청 공연 소식을 전해 들으며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작년에 콜롬비아 세종학당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학습자들이 수료식 축하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물놀이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학습자들 삶의 자긍심과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국경과 경계를 허물고, 각자의 삶 속 고단함을 위로하며 새로운 힘과 영감을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에서 진행된
사물놀이 강좌 모습
보고타 세종학당 학습자들과
김원민 교수가 함께한 공연 모습
사물놀이 등 세종문화아카데미를 통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한국문화 강좌가 외국인 학습자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물놀이와 전통연희 교육자, 연주자로서 오랜 해외 공연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15여 년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관객석에서 교민뿐 아니라 젊은 외국인 관객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많은 관객이 로비에서 연주자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케이팝도 아닌 전통 공연에 이토록 많은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세종학당 학습자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호응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종학당의 다양한 문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을 경험해 본 젊은이들이 공연장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세종학당의 강좌가 한국문화의 다양한 영역으로 넓게 확장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한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상업적 성공을 넘어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통해 확산돼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종문화아카데미는 한국문화의 진정성과 다양성을 세계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세종문화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 교류야말로 한류의 지속적인 확장과 한국문화의 글로벌 위상 정립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 소중한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세부 세종학당에서 진행된 사물놀이 강좌 모습
세종문화아카데미의 사물놀이 강좌를 진행하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수업을 통해 학습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나 철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물놀이의 원형인 풍물굿에 내재된 공동체성을 중요하게 소개합니다. 물론 과거 농경사회의 공동체적 관계성이 현대 사회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계약적 관계망을 통해 다양한 이합집산을 이루는 시대이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결국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물놀이의 네 가지 악기가 서로를 배려하며 하나의 앙상블을 완성하는 것처럼 그 정신은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이자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전통 장단의 중심에는 3분박 계열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북아시아의 공동문화권에서 유독 한국만이 3분박 장단을 중심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기에 삼재론 사상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늘(天)⋅땅(地)⋅사람(人)이 조화롭게 존재함으로써 우주가 완성된다는 사상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의 기본자를 천·지·인을 바탕으로 만드신 것처럼 한국 전통 음악에도 3분법적 세계관이 깊숙이 내재해 있음을 수업에서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설명하는 이유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조화롭게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전통 음악에 깃든 정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김원민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의 공연 모습
마지막으로 세종문화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해 세종학당재단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제언 부탁드립니다.
세종문화아카데미의 전문가 파견 사업은 세계 여러 학당에 고르게 기회를 제공하며 문화예술 교육의 형평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외 학당에서 전문 강사의 파견이 지속되기에는 여러 현실적 한계가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최근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에서 사물놀이 동아리 학습자들을 만나서 온라인 교육 시스템으로 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3년에는 보고타 세종학당과 협력해 사물놀이 교육 영상을 제작하고, 스페인어 자막을 덧붙여 제공한 바 있습니다. 이 영상은 전문 강사가 상주하지 않더라도 학습자들이 반복 시청하며 실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한 시도였습니다. 다만 온라인 실시간 수업은 안정적인 인터넷망이 필수적이라 시스템 한계로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국가별 인터넷 환경의 격차가 있으니 인터넷 기반이 잘 마련된 국가부터 단계적으로 온라인 교육을 확대해 나가는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세종학당에서도 온라인 교육 시스템 구축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놀이와 같은 실기 중심 교육은 현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한 온라인 전환을 넘어, 온라인 환경에 최적화된 교육방법론과 맞춤형 교안, 교재 등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연구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온라인 교육이 현장 교육을 보완하며 교육적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교육의 질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여유 있는 세종문화아카데미 전문가 파견 일정과 지원 방안도 마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