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업은 결국 좋은 교사로부터 나옵니다.”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우수 교원 공모전에서
‘재단 이사장상’을 수상한 이보현 교원과의 만남
지난 2024년 가을부터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세종학당에서 교원이자 운영요원으로 활동하고있는 이보현 교원은 AI 기술을 활용해 다언어 환경에 적합한 한국어 문화 수업을 기획·운영해왔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우수 교원 공모전에서 재단 이사장상(우수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문화 수업’ 프로그램의 배경 및 전략, 한국어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보현 교원님! 먼저 ‘월간 똑똑’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룩셈부르크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보현입니다. 대학에서는 영화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에디터와 방송작가 등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3의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2022년에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그곳에서 뜻밖에도 제가 한국어라는 언어에 아주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빠른 편이었지만 오히려 한국어에 대한 감각과 이해가 더 깊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면서 수업을 시작했는데, 점차 이 일이 제게 잘 맞는다는 확신이 생겼고, 2023년 보르도몽테뉴대학교(Université Bordeaux Montaigne)의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DU)을 수료하며 본격적인 교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지에서 한국어 교육 활동을 이어오다가 2024년 가을부터는 룩셈부르크 세종학당에 정착해 교원이자 운영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초급부터 중급까지 다양한 정규 수업을 맡고 있으며 학당장님과 함께 ‘한국문학클럽’, ‘한국영화클럽’, ‘한국어 채팅클럽’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 수업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회식에서 재단 이사장상을 수상한 이보현 교원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우수 교원 공모전에서의 재단 이사장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회 첫째 날 우수사례 발표를 통해서도 공유해 주신 ‘한국어, 외교 언어가 되다’의 수상 내용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번에 수상한 프로그램은 룩셈부르크 세종학당에서 현재 2학기째 운영 중인 ‘한국 영화 문화 수업’입니다. 전형적인 다언어·다문화 사회인 룩셈부르크는 학습자의 62%가 4개 이상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언어에 매우 익숙한 환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정보 전달’ 중심 수업만으로는 학습자들의 참여 동기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 한국어를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지닌 학습자들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외교 언어(diplomatic language)’처럼 작동하게 하자는 철학을 중심에 두고 수업을 설계하게 됐고, 다음의 세 가지 중심 전략을 설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테마 기반 한국 영화 선정’입니다. 매 학기 뚜렷한 테마, ‘천만 영화’,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수상작’ 등을 설정해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 역사, 문화 코드를 담고 있는 작품의 맥락과 상징을 해석하며 ‘문화적 사고’의 깊이를 키워가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는 ‘언어별 그룹 토론 구성’입니다. 영화 감상 후에는 학습자들이 각자 편한 언어(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로 그룹별 토론을 진행합니다. 각 그룹에는 한국어 원어민 조력자가 함께 배치돼 있어 학습자들이 질문할 수 있고, 토론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귀결되도록 유도합니다. 초급 학습자도 소외되지 않도록 언어 장벽이 느껴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는 ‘AI 도구의 적극적 활용’입니다. 초급 학습자의 발화 장벽을 낮추기 위해 플리토(동시통역 앱)를 도입해 학습자가 익숙한 언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통역되도록 했고 결과물을 캡처하거나 필기해 복습 자료로 삼도록 지도했습니다. 또한 수업 전에 릴리스AI로 자막이 없는 한국어 영상의 대사를 전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챗지피티, 클로드, 제미나이 등의 AI를 활용해 수준별 어휘·문법 자료를 학습지 형태로 제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수업 이후에도 학습이 연속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가 공모전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수업이 룩셈부르크 세종학당만의 특별한 사례로 남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환경은 다르더라도 각 학당에서 변형하고 조정해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는 수업의 철학뿐 아니라 수업이 어떤 고민 속에서 시작됐고 이를 어떻게 실현해 왔는지를 가능한 한 자세히나누고자 했습니다.
한국 영화 문화 수업을 듣는
룩셈부르크 세종학당 학습자들
한국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 및 핵심단어를 적어놓은 칠판
수상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이 수업을 함께 만들어 준 학당장님과 동료 교원들, 늘 힘이 되어주는 학당의 많은 분들, 그리고 특히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 준 저희 학습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이분들께 알렸고 모두가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수업을 어떤 특별한 성과를 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룩셈부르크라는 나라에서 만난 학습자들의 언어적 감각과 배경을 이해한 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해온 일이었습니다. 저를 지지해 주고 함께해 준 분들이 계셨기에 그 고민과 시도가 정확한 방향으로 힘 있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룩셈부르크’라는 작지만 특별한 공간에서 다양한 언어를 가진 학습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한국어 수업 이야기를 조금 더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제게 상을 주신 세종학당재단에도 감사드립니다.
동시통역 앱 ‘플리토’를 실행 중인 모습
한국 영화 감상 후 학습자들이 제출한 감상문
한국 영화를 감상하고 이에 대한 다국어 토론 및 AI 통역 앱까지 활용해 진행되는 ‘한국 영화 문화 수업’을 통해 룩셈부르크 세종학당에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나요?
이번 수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한국어가 룩셈부르크 안에서 실제로 ‘외교 언어’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프랑스어, 독일어, 룩셈부르크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다중 언어 사회인 룩셈부르크에서 한국어가 ‘소수 언어’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서로 연결되는 ‘중심 언어’로 자리 잡아가는 흐름을 발견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습자들 간의 유대감도 훨씬 끈끈해졌고 수업을 듣다가 “나도 말해보고 싶다”, “계속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와 정규 수업 등록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일부 학습자는 직접 로고를 만들거나 요약 발표를 자청하거나 홍보에 도움을 주는 등 수업 운영의 일원이자 ‘보조 운영진’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습자들이 자발적으로 빵을 만들어 오고 음료를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단지 언어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수업은 학당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와의 연결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역 영화관 시네마테크와 협력해 한국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현장 체험 수업을 진행한 뒤 해당 공간에서 한국어로 함께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룩셈부르크 대학 동아리와의 공동 영화 모임, 국제 영화제 내 한국 영화 섹션 운영 논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종학당이 지역 속 ‘한국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 시네마테크에서 진행된 현장 체험 수업
현장 체험 수업이 끝난 후
세종학당 학습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교원으로 일하면서 얻는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요?
세종학당에서 수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 곧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시간 속에서 쌓인 경험들이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학, 대학원, 직장 생활을 거치며 겪고 쌓아온 것들이 지금 한국어를 가르치는 매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의미 있는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 당시에는 사소하게 지나갔던 평범한 경험들이 지금은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언어 너머의 정서와 맥락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문법과 어휘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아오며 축적된 감각과 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작용한다는 점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바라는 ‘일을 통한 자기 실현’이자 ‘삶의 성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회식에서 수상한 우수사례를 발표 중인 이보현 교원
마지막으로 한국어 교육과 관련해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한글부터 가르쳤던 한 프랑스인 학생이 2024년에는 파리올림픽에서 BTS 멤버를 한국어로 인터뷰하고, 2025년에는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여러 한국 영화감독과 배우를 인터뷰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국어 실력이 늘어갈수록 더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학생을 보며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한국어 교육자로서 더 깊이 있는 지식과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교원으로서의 전문성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일입니다. 요즘은 ‘진심이 통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저는 진심이란 단순히 따뜻한 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과 전문성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좋은 수업은 결국 좋은 교사로부터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단단한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관심과 역량을 바탕으로 디지털 도구나 AI 기반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 자료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교재나 교구 등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자료들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며 더 많은 교사들이 자신만의 수업을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