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문해력과 한국어 교육의 방향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서혁 교수와의 만남
지난 7월 21일에 열린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회식에서 ‘AI 시대의 문해력과 한국어 교육’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은 서혁 교수를 만나 AI 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확장된 문해력과 한국어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혁 교수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월간 똑똑’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함께 교수님의 연구 및 강의 분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는 서혁입니다. 저는 주로 문해력, 독서교육, 읽기 교육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연구해 오고 있는데요. 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 교육의 필요성에 주목해 10여 년 전부터 텍스트 복잡도(이독성) 연구, 시선 추적 장치(Eye-tracker)를 활용한 읽기 과정 연구 등을 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재 개발과 교육 연구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AI를 활용한 언어 교육, 문해력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회식에서 기조강연을 진행하는 서혁 교수
이번 ‘2025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회식에서 ‘AI 시대의 문해력과 한국어 교육’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해 주셨는데요. 이번 강의에서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셨나요?
대회 개회식에서 ‘AI 시대의 문해력과 한국어 교육’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통해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계신 교육자분들을 뵙게 돼 매우 영광스럽고 뜻깊은 시간이었는데요. 강연에서는 제가 지금까지 연구해 온 주요 내용들을 소개하고 AI 시대의 확장된 문해력과 AI 시대 한국어 교육의 방향과 관련해 교수자 및 학습자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저의 기존 연구로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교육을 위한 텍스트 복잡도(이독성) 연구, 시선 추적 장치(Eye-tracker)를 활용한 읽기 과정에 대한 연구 등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 중 2013년부터 진행해 온 텍스트 복잡도(이독성) 연구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난도의 글을 어떻게 선정하고 제공할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인데요. 그동안 해외의 이독성 연구는 많았지만 한국어는 서양의 구문 구조와 많은 차이가 어 외국에서 개발된 이독성 공식이나 이론만으로는 한국어 문장이나 텍스트의 복잡도를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어의 구문과 문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이독성 공식으로서의 텍스트 복잡도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2014년부터 발표해 왔으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EBS와 함께 문해력 학습 교재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연구인 시선추적장치(Eye-tracker)를 활용한 읽기 연구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읽기의 인지적 과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모습들과 결과들 을 계량적,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공유드렸습니다.
AI 시대의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심화·변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AI라는 새로운 소통 참여자의 등장은 기존의 의사소통 이론으로 다룰 수 없는 복잡한 양상들을 만들어 냅니다. AI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목적과 참여자, 정보 등의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통의 맥락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구성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말이나 글과 같은 단일한 양식에 기반해 의사소통을 해 왔지만, 디지털 AI 시대에는 말이나 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자료, 소리, 동영상과 같은 복합 양식의 시대입니다. 이는 기존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로 분류되던 의사소통의 국면들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통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눈으로 보고 듣고 읽으면서 동시에 많은 정보들을 빠르게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고도의 인지적 부담을 갖게 되는 소통의 맥락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새로운 문해력 현상을 ‘보들읽기’라고 명명했습니다.
기조강연을 경청 중인 참가자들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AI 도구 및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학습자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교수학습 도구들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AI 챗봇을 활용한 대화 연습, 어휘 학습, 읽기·쓰기 교육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서술형 평가 문항에 대한 AI 활용 자동 채점이나 채점 보조, 피드백 보조 프로그램 개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나올 것이며, 이를 적극 활용하면 학습자들뿐 아니라 교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언어 교육은 강의실 수업 시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선생님들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강의실 밖에서 학습자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경험하는 노력들이 필수적인데요. 이때 AI는 학습자의 수준과 관심사에 맞춰 튜터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 각국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원들은 교재나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실제 1시간짜리 강의를 위해서 몇 배의 시간을 들이고, 적절한 예문이나 예시 하나를 찾기 위해서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을 고민할 때도 있으실 텐데요. 이럴 때 AI를 매우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가 교수학습 목표와 주요 문법, 구문 유형 패턴에 맞는 다양한 예문을 만들어 줄수 있고, 1시간 수업이나 한 학기, 1년 단위의 프로그램 계획을 짜거나 수업 지도안을 제안해 줄 수도 있습니다. 또 수업에 필요한 다양한 시각적 자료, 영상 자료 등을 직접 제시하거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 및 관련 연구들을 정리해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AI는 선생님들의 교수학습 목표와 학습자의 수준에 적합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자료나 과제를 생성해 줄 수 있고, 학습자가 스스로 자기 점검과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자료도 제작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시각 자료나 이미지, 동영상 자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AI가 한 번에 완벽하게 내 생각에 맞는 자료를 제시해 주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러나 직접 만들거나 손으로 그리려면 몇 시간 걸릴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만들어 주니 매우 유익하지요. 더 나아가 AI는 학생들이 쓴 글들을 채점하고 피드백을 해 줄 수도 있어 선생님들은 이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좀 더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출연 장면 및 최근 특강에 참석해 강연 중인 서혁 교수
전 세계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원들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자들에게는 AI 시대에 어떤 새로운 역량이 필요할지와 이를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지 궁금합니다.
저는 AI를 ‘거대한 정보도서관에 근무하는 보조 사서’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지시해야 합니다. 오프라인 도서관에서는 이용자 본인이 직접 해당 서가에 가서 자료를 찾고 대출 신청을 해야 하지만 AI라는 대리인에게 부탁할 때는 어디에 가서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지시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러한 능력을 AI에 대한 인간의 QC(Question+Commanding. 질문+지시) 능력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는 요즘 새로운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프롬프트 문해력(Prompt Literacy)의 핵심입니다. 요컨대 이용자가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AI가 자료를 찾거나 정리·제안해 줄 수 있는 정확한 맥락을 구성하고 제시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AI는 ‘할루시에이션(Hallucination)’, 즉 환각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AI가 제시한 정보나 제안들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다양한 채널과 방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비교·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I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AI보다 똑똑해야 할 것입니다. 답이 있는 방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답을 얻는 법이니까요. AI는 거대한 정보의 도서관을 운영하지만, 그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이용자인 인간은 그 거대한 도서관의 고객이자 주인이지만, 그 모든 정보를 기억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AI의 특성과 장단점을 이해하고 이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AI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 주도적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탐구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튜터(AI Tutor)가 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인간(Human Teacher)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과 인간이 대면적 상황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체득적 성장을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육자로서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끝으로 AI 시대의 급변하는 한국어 교육환경 속에서 세종학당재단이 고민해야 할 과제와 앞으로 어떤 것들을 준비해 나가면 좋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종학당재단에서는 이미 AI 챗봇을 활용한 한국어 대화 연습 프로그램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LLM(거대 언어 모델)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언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자료들까지도 빅데이터 속에 중요하게 포함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 세종학당의 학습자와 교육자들의 경험적 데이터들을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언어적·사회문화적·국가적 배경이 다른 학습자들의 한국어 언어 표현(문법, 발음, 쓰기 등)이나 오류 사례 등의 특징과 유형들을 모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자료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지만 세계 각국 현지에서 수집하는 자료들이 훨씬 더 생생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에는 세종학당재단의 중장기적 정책과 전략적 차원에서 예산도 필요할 것입니다.
반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각국의 세종학당 교원들이 AI를 활용한 우수 교수학습 사례들을 수집하고 공유하는 대회나 사이트(플랫폼)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AI 기술을 접목한다면 매우 유의미한 AI 기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AI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더 나아가 포스트 AI 시대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는 한국 언어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로 더욱 확장하고 심화시켜 나가기 위해 새로운 AI 패러다임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