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학당 사람들 이야기
안녕하세요. 10년차 한국어 교원 윤경미입니다. 7년 간 국내 대학교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작년 3월부터 중국 린이 세종학당
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문을 연 린이 세종학당은 중국
산동성 남쪽에 위치한 학당입니다. 린이대학교와 강남대학교가 함께
운영하고 있지요. 작년도 학당 수강생은 총 360여명으로, 대부분
린이대학교 학생들입니다. 학당 수강생 중 린이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들은 ‘한중합작 과정’을 통해, 한국의 강남대학교로 유학을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이 과정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희 학당의 자랑은 교원입니다. 세종학당 교원들 대부분 린이대학교의 한국어 학부 수업도
겸하고 있어, 강의 경험이 풍부하거든요. 또 저희 학당은 학기당 수업시수가 96시간으로 상당히
깁니다. 덕분에 교원들은 수업 진도에만 급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수업을 할 수 있지요. 수강생
들도 <세종한국어> 교재 한 권, 한 권을 깊이 있고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린이 세종학당에는 토픽 시험을 준비하는 학습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3월에 개강을 하고
4월에 토픽 시험을 보면, 그 이후에는 수업에 나오지 않는 수강생들이 많습니다. 내년부터는
토픽 대비반을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문화 행사에 필요한 재료
들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민입니다. 린이는 중국에서도 매우 작은 도시입니다.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 한국 식재료나 물건들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물놀이 수업은 꿈도 못
꾸지요. 그래서 저희 교원들끼리 한국을 오고갈 때, 사물놀이 악기를 한 두 개라도 가지고 오자는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대학교 어학당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반면 세종학당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학습자들을 가르치는 것이니 훨씬 수월합니다. 다만 세종학당 학습자에게는
한국어 학습 동기를 불어넣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내 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습자들은 세종학당 학습자들에 비해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편입니다. 한국에 유학을
온 학습자들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반면, 세종학당 학습자들은 한국어를 취미로 배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끈기가 부족한 편입니다. 초반에 수업을 들어보고 한국어가 어렵다 싶으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학습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종학당에서는 한국어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국인 학습자의 특성은 중국어와 한국어의 차이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대게의 중국인 학습자들은 한국어를 중국어와 비슷한 언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중국어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중국말
하는 방식대로 한국어를 쓰곤 합니다. 예를 들어 성조를 넣어 한국말을 한다던가, 중국어에는
없는 받침 발음은 하지 않습니다. 중국어와 한국어는 문법도 많이 달라서, 중국인 학습자들이
잘못된 문법으로 한국어 문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세종한국어> 교재로 어떻게 하면 말하기 연습을 많이 시킬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종
한국어>는 말하기, 읽기, 듣기, 쓰기 영역을 통합적으로 가르치는 교재입니다. 수업시수가 많지
않은 학당의 경우, 교재 속 모든 영역을 고르게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중국인
학습자들은 수업 중 말하기 보다는 조용히 필기하고 외우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인 학습자에게 말하기를 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도 요즘에는 다른 영역의 비중을
줄여서라도 말하기 활동을 많이 늘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당 학습자들을 위해 중국어와 한국 대중가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국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설명해주면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더욱 쉽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또 학습자들이 워낙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 저도 일부러 챙겨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한다고는 하지만, 학습자들의 수준은 못 따라가겠습니다. 최소한
요즘 이런 가요, 드라마가 유행한다는 정도만이라도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면 다 한국어 가르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힘듭니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어 교육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모국어로
한국어를 하는 것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국내
에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에게 버스 정류장 같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탈 때, 목적지만
생각할 뿐 그 과정에서 거쳐 간 버스 정류장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류장들을 지나가야 하지요. 저 또한 학습자들에게 버스 정류장과 같은 존재
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교원과 학습자는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관계입니다.
어떤 학습자가 이번 학기에 제게 한국어를 배웠어도, 다음 학기에는 다른 선생님에게 배울 수도
있고, 학당을 그만 둘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 한 학기라도 저에게 한국어를 배운 학습자
들이라면 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던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9월의
주인공
제63호 | 2018. 9